[마르크스의 孔子 訪問記]
-中國人 郭末若(1892-1978)의 콩트-
공자(孔子)가 그의 사당(祠堂)에서 전날 제사(祭祀)에 먹다 남은 돼지머리를 뜯고 있었다. 이때 온통 뺨이 수염으로 뒤덮인 웬 서양인(西洋人) 한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다름 아닌 칼 마르크스였다. 공자도 이미 그 유명한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한편 놀랍고 또 한편으로 반가워서,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悅乎아? 마르크스 선생(先生)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먼 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하며 인사를 건넸다. 마르크스는 받아서,
“안녕하십니까? 공자 선생. 이 동양사회(東洋社會)는 선생(先生)의 사상(思想)이 지배(支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機會)에 저의 사상(思想)을 한번 펼쳐보고 싶어서 이렇게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왔습니다.”
하였다. 공자는 아차 싶으면서도 그 동안 궁금하게 여겨 오던 그 유명(有名)한 마르크스 사상(思想)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예 그렇군요. 그러면 선생(先生)의 사상(思想)이 어떤 것인지 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좋습니다. 말씀해 드리지요. 저는 종교가(宗敎家)나 형이상학자(形而上學者)와는 다릅니다. 저의 사상(思想)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현실세계(現實世界)에서 행복(幸福)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정말 살 만 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問題)에서 출발(出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하면서 다시 물어왔다. 이에 공자가,
“알고 보니 선생의 사상도 역시 그 출발점(出發點)이 저의 사상과 같군요. 그러면 어떤 세상(世上)이 되어야만 우리가 정말 행복(幸福)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하였더니, 마르크스가,
“참 좋은 질문(質問)이십니다. 제가 이상(理想)으로 삼는 사회(社會)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능력(能力)을 발휘(發揮)할 수 있는 기회(機會)가 고르게 주어지고, 모두가 다 생활보장(生活保障)을 받아서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사회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정말 지상천국(地上天國)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기에, 공자가,
“그렇다면 선생이 생각하는 세계(世界)는 결국 나의 대동세계(大同世界)와 같은 것이군요. 어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대도(大道)가 시행되니 천하(天下)가 공평(公平)하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자가 정치(政治)를 맡아 하니 국민(國民)이 신뢰(信賴)하고 사람들이 화목(和睦)하다. 늙은이는 여생(餘生)이 편안하고, 젊은이는 일할 곳이 있으며, 어린이는 건강하고 싱싱하게 자란다.’ 이것이 바로 대동사회(大同社會)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선생의 사상(思想)과 같지 않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대로 승복(承服)할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공상가(空想家)가 아닙니다. 저는 역사(歷史)와 경제(經濟)를 깊이 연구(硏究)한 결과(結果), 산업(産業)이 발전(發展)하면 자본(資本)이 소수(小數)의 손에 집중(集中)되어 노동계급(勞動階級)의 투쟁(鬪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그래서 혁명(革命)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아 물론(勿論)이지요. 저도 일찍이 ‘적은 것을 걱정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적은 것도 문제(問題)입니다. 저는 사유재산(私有財産)을 반대(反對)하지만, 산업(産業)의 발전(發展)은 이를 적극 주장(主張)하는 사람입니다.”
“예예, 저 또한 ‘먼저 민중(民衆)을 먹고 살게 하고, 그러고 나서 가르치라’고 했으며, 또 경제력(經濟力)과 군사력(軍事力), 그리고 국민(國民)의 신뢰(信賴)가 정치(政治)의 근본(根本)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선 산업(産業)을 발전(發展)시켜야만 골고루 분배(分配)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물을 함부로 땅에 흘리는 것은 나쁘며, 또 그것을 주웠다고 해서 자기가 가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물질(物質)을 아주 중요시(重要視)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있는 저의 제자(弟子) 자공(子貢)만 하더라도 장사를 해서 엄청나게 돈을 번 사람입니다.”
여기까지 대화(對話)를 나눈 마르크스는, 그렇다면 공자(孔子)의 사상(思想)도 자기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공자가 이처럼 2천 년이 넘도록, 아직도 여전히 자기 사당(祠堂)에서 식은 돼지머리나 뜯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곳에서 자기 사상(思想)을 펼쳐 보았자 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 돌아가기로 하였다.
“저는 이제 그만 돌아가서 마누라 엉덩이나 도닥거려 주어야겠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무척 부러워하며,
“아 선생은 부인이 계시군요!”
하였다. 마르크스는,
“왜 없겠습니까? 제 마누라는 제 동지(同志)인데다가, 또 굉장(宏壯)한 미인(美人)이랍니다.”
하였다. 마르크스의 마누라 자랑에 공자는 길게 탄식(歎息)을 하면서,
“모두들 부인이 있는데, 나만 없구나!”
하다가는, 이내 안색(顔色)을 바꾸어서,
“하지만 저는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처럼 남의 부모를 공경하고,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의 아이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나의 마누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의 부인도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선생의 부인이 곧 내 마누라가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르크스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아니, 나는 공산(共産)을 외칠 뿐인데 선생은 공처(共妻)까지 주장(主張)하는군요. 선생은 저보다 훨씬 더 위험(危險)한 인물(人物)입니다.”
하고는, 혹시나 공자가 정말로 유럽까지 따라와서 자기 부인을 공유(共有)하자고 주장(主張)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1994. 2. 12.]
너무 우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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